2019 레드 어워드 '주목할 만한 형식'부문 선정의 변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다’는 연영석. 그의 입을 통하여 비속어를 포함한 일상어는 거침없이 노래가 된다. ‘다’로 끝나는 한국어의 난점을 각운으로 탁월하게 역이용하는 등 언어의 묘미를 살린다. 교과서에서나 볼 법한 해학을 되살리고, 노동현실과 이주노동자를 등장시키고, 자신이 ‘2진’임을 인정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직설의 쾌감과 평범함 그리고 원숙함은 자유분방한 선율을 만나 삶 자체에 근접한다. 연영석의 멜로디와 리듬은 또한 서정적이며 통쾌하다. 솔직함이 꾸밈보다 진한 감동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이 노래들은 음악의 본질에 대한 보고서이다. 그래서 노동가수로는 이례적으로 한국대중음악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하였고 대중음악계에서도 높이 인정받으며 시대에 걸맞고 유효한 민중음악의 가능성을 열어왔다. 14년 만의 새 앨범 <서럽다 꿈같다 우습다>와 문화노동자 연영석은 늘 현장을 지켜온 노동음악, 시대를 대변하는 싱어송라이터, 젊은 음악과 교통하는 접경의 예술 그 표본이다. 이에 <주목할 만한 형식>을 드린다.
닥터탐정 ‘송윤희’
<닥터 탐정>은 산재와 직업병의 문제를 메디컬 수사물의 형식으로 고발한 드라마다. 드라마는 미확진질병센터라는 가상의 기관에서 역학조사를 벌이는 의사들의 활약을 흥미롭게 담는다. 그러나 드라마가 진정으로 보여주는 것은 노동현장의 구조적 모순이다. 송윤희 작가는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출신으로 다큐멘터리 <하얀정글>을 통해 한국의료의 실태를 날카롭게 고발하기도 하였는데, 장르 드라마를 통해 예민한 노동이슈를 담는 놀라운 용기와 솜씨를 보여준다. 드라마는 구의역 참사, 수은 중독, 메탄올 중독 등을 서사에 녹여낼 뿐 아니라, 실제화면을 담은 에필로그를 첨부해 앞의 장면들이 허구가 아닌 현실의 재구성임을 감각시킨다. 또한 극 전체의 갈등을 통해 살인적인 ‘무노조 경영’을 표방하는 삼성의 위선적인 실태를 까발리는데, ‘반올림’의 투쟁사가 보여주듯 매우 타당한 재현이다.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매체인 지상파 드라마를 통해 가장 통렬한 자본주의 비판을 수행했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이정식
자기 지시적인 서사로 가득 찬 작업이 넘쳐나는 시대에 이정식의 작업이 품고 있는 ‘자기 중심성’은 지금 우리가 주목할 만한 형식이다. 그의 작업은 일견 당사자성을 강조하는 듯하지만, 외려 자신과 같은 질병에 걸린 타인이라 해도 이해란 항시적 의미화와 연대가 필요함을 피력한다. 이정식이 출판한 책 <김무명>을 읽고 있자면, 우리 일생의 쟁투란 자신이 직접 체험하지 않았던 일들과도 닿아 있지만, 그것에 부끄러움과 부채 의식만 느끼지 않을 것이라는 자부가 느껴진다. 이 자부심은 타인의 목소리를 반사시키며(필사) 재의미화 되는 순간을 끈질기게 발견할 것이라는 결기와 이어져 있다. 이정식의 작업은 삶과 작업이 첨예하게 갈라지는 지점들을 여미되, 언제나 작업보다 삶이 더 구체적이고 복잡한 현실임을 상기시킨다. 이에 주목할 만한 형식 부문에 작가 이정식을 선정한다. 이정식의 작업을 변론하게 된다면 T.S엘리엇의 말로 대신할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이 허무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라고.
역사란 수없이 많은 교활한 글귀,
억지로 꾸민 통로들
그리고 이슈들, 살랑거리는 야망으로 속삭이는 것,
우리를 허무함으로 인도하나니.
- T.S. 엘리엇, 제론션 (Gerontion)
2019 레드 어워드 선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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