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레드 어워드 '주목할 만한 담론'부문 선정의 변
희망 대신 욕망
이렇게나 솔직하면서도 유쾌하고 진지하게, 그리고 더없이 당당하게 장애의 존재와 욕망의 평등에 대한 주장을 하는 책을 만나고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것은 반갑고 기쁜 일이다. 저자의 말대로 이 책은 하나의 증언이다. 그는 장애인 문제를 대하는 데 있어 눈물 대신 연대가, 동정 대신 분노가 필요한 현실을 구체적인 체험으로 강력하게 환기시킨다.
이 책은 무엇보다 성장담이다. 그러나 장애 극복의 인간승리 스토리와는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저자는 장애가 단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무엇보다도 장애가 단지 신체손상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는 인식과 제도의 문제라는 것을 또렷하게 밝혀준다. 장애에 대한 인식전환을 요구하는 책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만큼 격렬한 선언은 흔하지 않다. <희망 대신 욕망>은 뜨거운 가슴과 차가운 머리가 아니라 뜨거운 몸으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이렇게나 뜨거운 존재론을 마주하는 축복에 감사하며 <레드 어워드 – 주목할 만한 담론>으로 선정한다.
사회주의탐구영역
이제 레드컴플렉스도 빛이 바랬다고 하지만 여전히 사회주의는 낯설고 불편한 사상이다. 사상 자체의 불온함만큼이나 먼지 쌓인 유물의 느낌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좌파의 상상력은 결핍되었고, 신파스러우며 재미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강후의 ‘사회주의탐구영역’의 문제제기 방식에 환영한다. 그는 의식주에서부터 국제문제까지 일상의 문제와 사회주의적 상상력의 결합을 보여준다. 거시적이고 막연한 이념적 논쟁과 투쟁은 평범한 개인들에게는 낯설고 공허하다. 오히려 자본주의에 찌든 일상의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사회주의는 어떤 해결책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서 상상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좀 엉성하면 어떠하랴? 어차피 상상인 것을! 그런 의미에서 지금보다 더욱 가볍고 사소한 일상과 기발한 사회주의적 상상의 결합을 통한 일상으로부터의 혁명을 기대하며 강후의 ‘사회주의탐구영역’을 레드어워드의 수여자로 추천하는 바이다.
#오빠 미투
한겨레21의 #오빠미투 시리즈는 친족 성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담았다.
생존자들은 ‘친족’이라는 오활한 표현 속에 숨은 ‘오빠 강간’을 폭로한다. 오빠 강간의 조력자는 아빠, 엄마이고, 동생이다. 이들은 가족이라는 안전한 가면을 쓰고, 피해자 <딸>을 철저하게 고립시키고, 가해자 <아들>의 죄를 덮기 위해 기꺼이 삽을 뜬다.
<딸>의 피를 빨아 먹고 자란 나무가 무성한 숲을 이루고, 가족들은 안식의 돗자리를 편다. 침묵의 숲에는 음산한 바람이 불고, 가족들의 웃음소리는 기괴하다.
<딸>들은 작게 말한다. ‘오빠가 그랬잖아. 엄마도 알고 있었잖아.’ #오빠미투는 나무가 되어 그들의 소리를 들어주고 외쳐준다. 친족 성범죄가 날로 증가한다는 뉴스를 보며, 둘러 앉아 과일을 먹고 있는 평범한 가족을 향해 효자인 오빠의 얼굴 뒤에 숨어있는 진실을 외면하지 말라고. ‘근친상간’이라는 오래된 활자가 아니라, <딸>들이 피로 쓴 ‘근친강간’의 생생한 외침을 들으라고.
생존자의 목소리는 가해자들의 뻔뻔한 입에 재갈을 물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러나 #오빠미투는 세상을 울리는 메아리가 될 것이다. 피해자들의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불편한 진실에 침묵하는 사회를 일깨우고, 모든 약자들에게 용기 내어 연대를 가능하게 한 #오빠미투 장수경, 전정윤 기자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2019 레드 어워드를 드린다..
2019 레드 어워드 선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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