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레드 어워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 선정의 변
비하인더홀
<비하인드더홀>은 불법촬영 실태를 고발·풍자하는 단편영화다. 영화는 ‘안정적인 삶을 추구하는’ 박 부장이 화장실 불법촬영을 즐기게 된 연유를 보여준다. 손쉬운 카메라 구입과 화장실 벽의 많은 구멍들, 경찰의 솜방망이 처벌 등등. 영화는 관점을 바꾸어 불법촬영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일상을 영위하기 힘들어진 여성을 보여줌과 동시에 “주제를 모르는 년들은 내 두 눈으로 똑바로 봐 주겠어”라는 박 부장의 독백을 통해 불법촬영 가해자들의 욕망이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여성의 인격을 침해하고 모멸하는 것에서 쾌감을 얻는 일종의 지배욕임을 잘 보여준다.
“이 작은 구멍으로 인해 내가 언제까지 불안해해야 하나”라는 정희의 환멸은 정확한 지점에서 응징에 도달한다. 마지막 장면은 굉장한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안기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담겨있다. 첫째는 불법카메라가 놓인 그 자리에 곧바로 ‘남성의 눈’이 놓여있음을 즉각적으로 환기시키고, 둘째는 여성들이 자신을 옭아매고 단속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확한 대상을 향해 분노를 표출시켜야 함을 일깨운다. 날카로운 송곳처럼 폐부를 찌르는 엔딩이다.
섹스 인 더 시티
도시에서 사랑과 섹스는 가당한 것일까. 송경화 작가의 <섹스 인 더 시티>에서는 서로 다른 연차의 전·현직 간호사 다섯 명이 저마다의 사정을 자기 목소리로 고백하고 토로한다. ‘대도시의 사랑법’이 ‘대형병원의 생존술’로 변질되어 가고, 조직 내에서는 강도 높은 노동을 수행하기 위해 공공연하게 ‘태움’ 현상이 발생한다. 또한, 돌봄 노동을 수행하는 간호사가 자기 돌봄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급기야 실존마저 상실해 가는 모습이 애틋하게 그려진다.
이처럼 <섹스 인 더 시티>는 다소 복잡하여 가시화하기 어려운, 노동자 간의 갈등과 교차적인 정체성의 문제, 노동자의 자기 소외 문제 등을, (당사자의 관점에서) 무대 위에 풀어냈고, 그 과정에서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하여 관객들에게 객관적인 데이터를 제공함으로써 이 사안을 감정적인 차원에서 머무르게 하지도 않았다.
지금은 당사자의 시대다. 당사자가 말하고 당사자가 행동한다. 그러함에 있어서 이를 대리하여 서사로 꾸미는 이야기와 재현의 장르, 즉 드라마(연극)는 무엇을/어떻게 할 수 있을까? 예술가 자신의 눈에 포착된 (실재적)당사자와 이를 재현할 때의 (연극적)당사자 간의 절묘한 균형감각 혹은 윤리감각이 요구될 것이다. 실제로 노동을 주제로 하는 작품은 점점 많아지지만, 노동(자)을 대상화하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성급한 주체화의 오류에도 빠지지 않는 작품은 드물다고 여겨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의 성취와 작가의 시선에 주목하게 되었다. 송경화 작가(극단 낭만유랑단)의 <섹스 인더 시티>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게 마지막이야>는 불합리한 노동 현장을 속절없이 버텨낸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연극이다. 깔끔하게 진열된 상품들이 즐비한 내부가 들여다보이는 편의점 뒷문, 커다란 쓰레기통과 CCTV 불빛만이 반짝이는 쓸쓸한 공간을 관객들이 응시한다. 지켜지지 않은 약속으로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해고된 남자의 아내, 아내가 일하는 편의점의 계산 빠른 점주, 해고된 남자와 고공농성을 함께 했지만 서로 등을 돌리게 된 직장 동료, 아내가 밀린 학습지 비용을 대신 내줬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는 학습지 교사, 체불된 편의점 알바비를 받고자 아내와 연대하려는 맥도날드 알바생. 삶을 지탱시켜주는 최소한의 약속조차 이행되지 않는 세상 속에서 이들은 마주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킬 수 없는 혹은 지키고 싶지 않은 ‘약속’을 말하고, 외면하고, ‘책임’을 갈구하고, 회피한다. 지키지 않는 약속에 좌절한 이도, 어떤 약속도 다시는 하지 않겠다 결심한 이도, 당사자이면서 동시에 타자이다. 예술 노동을 하는 우리들이 누구나 겪고 있거나 겪어왔던 우리들의 다른 모습, 그들이 바로 우리들이다. 일상과 노동, 일상과 약속, 일상과 연대, 일상과 예술의 경계에서 <이게 마지막이야> 창작진들은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다. 이들은 공연 내내 지긋지긋한 약속들이 이끌어내는 지난한 삶의 연대를 편의점 뒷문에서 함께 겪어낸다. 책임을 저버린 연대에 분노한 알바생이 편의점 뒷문을 잠가버릴 때 우리들은 해고된 남자가 걸어버린 마음의 빗장을 이해한다. 남자의 아내, 직장동료와 학습지 교사가 바라보는 편의점 안을 우리들도 함께 들여다본다. 우린 어떻게 저 문을 열 수 있을까? 우리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저 문은 스르르 열릴 것인가? 이 지점에서 우리들의 질문은 자신을 향한다. 우리에게 노동과 연대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약속을 지키고 있는가? 설사 약속을 지키지 못해도 다시 손 내밀 수 있는가? <이게 마지막이야> 창작자들이 버티고 선 아슬아슬한 경계 위에 우리들의 시선이 내려앉는다.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버티겠다는 마음, 또 다른 약속이 경계 위에 피어난다. 기꺼이 경계 위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심정으로 <이게 마지막이야>를 만들어낸 창작자들에게 감사를 담아 ‘주목할 만한 시선’상을 수여한다.
2019 레드 어워드 선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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