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레드 어워드 총평
올해는 주목할 만한 반동을 포함하여 총 8개 부문에서 23개 수상작이 선정되었다. 23개의 수상작들을 개괄해보면, 뚜렷한 경향성과 더불어 3개의 키워드가 발견된다. 그것은 예술노동자, 여성, 제주이다.
첫째, 예술노동자의 삶을 고민하고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과 활동들이 크게 늘었다. 주목할 만한 광장부문에 선정된 웹드라마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 팟캐스트 <예술강사 핫 이슈-옛슈>, 주목할 만한 담론부문의 연극 <자본>, 주목할 만한 토대부문의 <국립국악원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광화문 집회> 등이 여기에 속한다.
시트콤협동조합이 만든 <그 새끼를 죽였어야 했는데>는 소셜미디어의 자유로움과 기발함을 살린 시트콤으로, 노동현실에 대한 세련된 풍자와 더불어 사랑과 우정의 노동조합 이야기를 담는다.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팟캐스트 <옛슈>는 국악, 영화, 연극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인이자 교육현장에서 비정규직 노동자인 예술강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일터에서 접하는 문제들을 차분하게 풀어내며, 실업급여, 종합소득세 등의 생활정보까지 담아낸다. 연극 <자본>은 칼 마르크스 탄생 200주년을 맞아, 그의 저서 <자본>을 연극으로 재탄생시킨 기획이다. 배우들은 예술노동자로서 <자본>을 함께 읽으며 예술현장에서 발생하는 착취의 구조를 이해했으며, 이 과정을 연극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렸다. 좀처럼 연극으로 옮길 수 없는 저작을 연극화한데다, 무대 안팎을 개념적으로 넘나드는 진귀한 기획으로 손꼽을 만하다. <국립국악원 무용단 갑질, 인권탄압 사태 진상규명 비상대책위원회 광화문 집회>는 지난 8월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국립국악원 무용단의 집회를 가리킨다. 참가자들은 검은 옷에 피켓을 들고 모여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갑질과 폭언 등 인격모독이 이루어져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예술노동자로 각성된 이들은 집회현장에서 자신들의 노동인 ‘일무(佾舞)’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국립국악원 내에서 노동조합을 만드는 등 예술과 노동을 일치시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둘째,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여성’ 이라는 키워드는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화두가 되었다. 올해 수상작들 중에서도 여성 예술가들의 약진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주목할 만한 광장부문에 선정된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 주목할 만한 토대부문의 <여성인권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부문의 래퍼 슬릭, 주목할 만한 연대부문의 사진가 김희지, 주목할 만한 담론부문의 트위터 계정 ‘남애시인 고간’이 여기에 속한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팟캐스트 <을들의 당나귀 귀>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유쾌하게 들려준다. 성폭력, 이주노동, 여성참정권, 작업장 안전 문제를 넘어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까지 아우르며, 한국 사회를 새로운 인식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말들의 행진을 이어간다. <여성인권영화제>는 지난 12년 동안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 폭력의 문제를 제기하고 일상의 관계 속에서 여성의 목소리를 발굴하며, 젠더와 인권의 문제를 고민해온 소중한 문화예술의 장을 마련해왔다. 래퍼 슬릭은 여성혐오가 난무하는 한국 힙합 신에서 페미니즘 래퍼로 활동 중인 실력파 뮤지션이다. 그는 젠더적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음악을 선보일 뿐 아니라, 여성들의 권리를 위한 집회와 무대를 찾아다니며 힙합의 저항성을 온 몸으로 실천해 보인다. 김희지는 젠더운동의 현장에서 투쟁하는 여성과 성소수자를 담아온 사진가이다. 그의 사진은 대상과의 깊은 연대감을 형성하며,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가볍게 뛰어넘는다. ‘남애시인 고간’은 젠더적인 관점에서 완전히 새로운 시의 세계를 보여준다. 초기에는 급진적인 패러디와 미러링을 통해 그동안 문학의 이름으로 자행되었던 여성혐오를 고발하였으나, 몇 편을 거치지 않아 위풍당당한 절창들을 쏟아내며 문학적인 것과 비문학적인 것의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전복적인 예술실천을 보여준다.
셋째, 4.3 항쟁 70주년을 맞은 올해에 4.3 사건과 강정 마을을 소재로 한 뛰어난 예술 활동들이 많았다. 주목할 만한 담론부문의 ‘<한라산> 복간 프로젝트’를 비롯하여 주목할 만한 형식부문의 <강정지킴이>, <위험한 특종>, <반복된 신호> 가 모두 여기에 해당된다.
<한라산>은 1987년에 출간된 이산하의 시집으로, 제주 4.3 사건을 다룬 김봉현의 저서<제주도 피의 투쟁사>의 내용을 시로 변모시켰으나 당시에는 자기검열의 과정을 통해 일부표현을 수정하여 출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인은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는 수난을 겪었다. 올해 목련구락부는 31년 만에 <한라산>을 복간하면서 당시 일부 수정되었던 표현들을 원래대로 복원하였다. <강정지킴이>는 2018년 해군국제관함식을 평화의 이름으로 거부하며, 공권력에 맞선 저항을 이어갔다. 이들은 노래와 춤으로 해군국제관함식의 위선을 폭로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여전히 자행되는 국가폭력을 드러나게 하였다. 강기희의 소설<위험한 특종>은 남조선 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을 현재의 종로 한복판에 등장시키는 실험을 감행한다. 또한 인물들의 월북을 통해 역사와 항쟁의 시공간을 북조선으로까지 넓히는 대담한 전개를 보인다. 4.3 사건을 피해자의 서사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좌파적인 의미를 살려낸 작품으로 기념할만하다. <반복된 신호>는 강정마을 활동가였던 이우기의 사진집으로, 강정마을의 이미지를 즉각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지만 장면의 겹침과 시선의 활용을 통해 강정마을에 대한 끈질긴 연대와 기록을 이어간다.
한편 올해 주목할 만한 반동으로는 ‘김기덕류’와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되었다. ‘김기덕류’는 한명의 가해자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 사회를 강타한 ‘미투 운동’은 문화예술계 거물들의 성폭력을 잇달아 폭로하였다. 그 중 이윤택은 구속되었지만, 김기덕, 조재현, 고은 등에 대한 수사와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피해자들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했다. 이에 김기덕을 비롯한 가해자들의 처벌을 촉구하는 의미에서 주목할 만한 반동으로 선정하였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가 131명의 공무원에 대한 징계 및 형사처벌을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에 대한 셀프면책을 단행하였다. 블랙리스트 사건의 구체적인 실행자였던 문화체육관광부가 셀프면책을 통해 자신들의 죄과를 인정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규탄하고자 주목할 만한 반동으로 선정하였다. 이들의 반동성이 역사 앞에서 심판받기를 바란다.
2018 레드 어워드 선정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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